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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살지윤/미국 일상

유기견을 입양하다 [1] - 운명일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아주 오래전부터 반려견을 키우고 싶어 했다

울며 떼를 써도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아파트에서는 키울 수 없다는 완강한 부모님의 의견 덕분에...

 

그런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저번 주였다

정확히는 9월 15일 수요일

 

여름이 끝나가면서 아파트 단지 내 수영장이 시즌 오프를 맞이했다

그 마지막을 장식한 건 pup pool party

반려견들을 데려와 수영장에서 놀게 하는 이벤트다

 

그리고 그 옆에서 강아지 입양 이벤트가 있을 것이라는 메일을 받았다

그 메일을 받고는 2주일 전부터 달력에 표시를 해두고 설레었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그냥 구경이나 가자는 마음으로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장은 이미 물놀이, 공놀이로 신난 강아지들로 가득했고

한쪽 구석에는 유기묘들이 있었다

너무 귀여웠다 작고 소중해 보였다

 

근데...

유기견은 없나? 싶어서 집에 가려던 찰나,

사람들 품에 안겨 줄줄이 등장하는 꼬물이들

 

다른 강아지들도 많았는데 유독 눈에 띄는 4마리

마치 시골 똥강아지처럼 생겨서 내 맘을 흔들었다

 

그 네 마리는 모두 형제자매였는데

2마리는 까만색 2마리는 갈색이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밟히는

빨간색 목줄을 한 아이.

이름이 엘모라고 한다

 

네 아이 모두 sesame street라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이름을 땄다고.

 

Elmo from Sesame Street

 

다른 강아지들은 낯은 가리면서 호기심도 많아

내 품에서 벗어나려고 낑낑 대는 반면,

 

엘모는

내 품에 얌전히 포옥 안겨있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런데,

엘모를 잠시 내려놓은 사이

누군가가 엘모에게 반해버렸다

 

안아본지 단 5분 만에

엘모의 입양을 결정한 것이다

 

유기견 보호소 직원에게 물어보니

이미 입양 절차를 시작했다고...

 

 

그 후 30분이 넘도록

나는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서성였다

 

엘모가 아직 안 가고 있길래

직원에게 두세 번이나 물어봤다

입양된 거 확정이냐고.

 

직원이 말하기를,

입양하기로 한 사람이 원래 키우고 있는 강아지랑

잘 맞는지 테스트도 해보고

이런저런 절차를 밟는 중이라고

 

아... 정말 가는구나

엘모 같은 아이가 아니라면

데려갈 자신이 없었던 나는

마음을 접고 집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마지막 입양비 결제만 남겨두고

신용 카드를 가지러 갔다던 그 입양자가

무거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직원과 꽤나 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엘모만 바라보던 나를 아는 다른 직원은

뒤에서 살짝 얘기를 엿듣고는

멀리서 나에게 눈짓을 보내왔다

'좀만 기다려봐 내가 갈게'

 

무슨 일이지?

 

마음이 주체할 수 없게 두근거렸다

 

긴 얘기 끝에 떠나는 입양자.

그리고 거기 있던 4명의 직원 모두가 나에게 왔다

'축하해!!! 엘모가 다시 돌아왔어!!'

 

얘기를 들어보니,

그 입양자는 같이 왔던 여자 친구와 곧 결혼 예정이고

최소 일주일 이상은 신혼여행을 갈 예정인데

 

엘모는 아직 태어난 지 2달밖에 안 된 아기라서

어디 맡길 수도, 데려갈 수도 없을 것 같아서

지금 이 시기에 아기를 입양하는 건 옳지 않은 선택이라고 판단한 것.

 

 

그래서 엘모가 다시 내 품으로 왔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는 무언가에 홀린 듯 입양을 하겠다고 말했다